송문자: 아이를 업고 도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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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손

서울 대낮의 가정집.
자기 힘처럼 서 있는 아이 뒤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는 손이 있다.

 

 

1942년 해방 전에 10남매의 맏이로 태어나, 소학교 시절 6.25를 겪고, 70년대 서울에 넓은 마당을 가진 주택을 자가로 소유했던 손. 그 주택을 그대로 두었다면 요즘 꿈의 직업이라는 건물주를 거쳐서, 손주들쯤은 도우미 손에 맡기고, 여행다니며 노후를 즐겼을지도 모를 손.

송문자 씨의 손이다.

10남매 중 첫째로 문을 잘 열고 나오라는 의미의 ‘문’자 씨는, 5살 부터 동생을 업고 키웠던 기억이 있다. 냇가에서 동생의 기저귀를 빨기 싫어 투정부렸던 기억. 스물 다섯이 되어 자신의 큰 아이를 낳았을 때, 한 해 먼저 태어난 막내동생까지 젖을 먹여 키웠던 기억.

그리고 1998년에 큰 딸의 딸아들인 외손주들 등하교 시키는 것을 도와주게 된 것이 또다른 시작이었다. 막내 아들네 딸 하나를 생후 6개월 때부터 7살 때까지 거의 키우다시피 했고(2006년-2012년), 늦게 장가 간 큰 아들의 두 자녀를 돌보기까지(2012년-2017년). 송문자 씨의 손은 무수한 기억 만으로도 화려한 커리어를 갖고 있다.

 

이은서 (“봄”): 어떻게 해서 손자들을 돌보게 되셨나요?

송문자 씨: 작은 아들 부부가 맞벌이를 하니까, 아들 장모가 큰 아이를 맡게 되었는데 둘째가 태어날 즈음에 장모 몸이 편치 않아서 제가 둘째아이를 본격적으로 맡게 되었어요. 애가 4개월 때 애엄마가 복직을 하면서 그 때부터 초등학교 입학하기 직전까지 내가 돌봤죠. 그리고 큰 아들이 늦게 장가를 들어 같이 살게 되면서 바로 큰 아들 애기를 봤지. 그렇게 내 손에 거쳐간 손주들이 3명이네요.

손자들을 돌보면서 기억에 남았던 일을 말씀해 주세요.

작은 애 딸이 유치원 졸업을 하면서, 졸업식에서 부모들 키우느라 수고 했다고 세족식을 했는데 유치원 원장선생님이, “예원이(손녀딸) 는 할머니가 수고하셨으니까 할머니가 나오세요.” 그랬어요. 그 때 손녀가 정성스럽게 내 발을 씻겨주는데, 그동안 힘들었던 게 싹 가시는 것 같았어요.

 

 

손자들을 돌보면서 가장 힘든 때는 언제였나요?

가장 힘들때는 역시 아이들 아플 때에요. 아이가 아프면 내가 잘못 돌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것보다 아이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는 것이 가장 마음이 아프죠. 아프면 또 더 많이 업어주고 손도 많이 타니까, 체력적으로도 내가 딸리고… 얼마 전에 몸이 하도 피곤해서 영양주사를 맞으러 병원에를 갔는데, 의사가 저더러 할머니 나이(76세) 에 아직도 애들 보고 집안일도 하시냐면서, 피곤할만 하다고 그러더라고. 너무 일을 많이 하신다고. 근데 나는 내 소명이라고 생각해요. 그니까 몸이 내 맘같지 않아서 체력이 딸릴 때 그게 젤로 속상해요.

손자들을 돌보면서 가장 뿌듯했을 때는요?

내가 만들어 준 것 잘 먹고, 건강하고 잘자고 재롱부릴 때지. 근데 자주 그래요. 그러니까 보죠. 이뻐요. 너무나.

자식이 예쁘세요, 손자가 예쁘세요?

(단호하게) 손자가 예쁘지.

자식은 이쁜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키웠어요. 그래도 우리 큰 아들 낳았을 때 사람들이 그러더라고. 아버지보다 훨씬 발전했다고. 다 이쁘다고 했어 우리 아들을. 막내 아들도 참 이뻤어요. 유치원을 막내만 보냈는데, 세수 시키고 유치원 원복 딱 입혀놓으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어요. 딸은 좀 남자같이 생겼다고는 했지만, 하는 행동이 이뻤어요. 동생들도 잘 돌보고.

손자들 보는 것 말고, 일을 하신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심리 상담가가 되어보고 싶어요. 목사 사모로 있으면서, 교회 사람들의 어려운 일들을 많이 들어주었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나더러 상담을 썩 잘한다고 해요. 늘 아이들 키우고, 남편 일 뒷바라지 해주는 것이 내 삶이었는데, 그런 칭찬을 들으니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이걸 직업적으로 했다면 정말 잘 했겠구나…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그런 일을 해보고 싶어요.

 

돌봄의 힘, 우리는 늘 누구에겐가 돌봄을 빚지고 있다.

며누리에게

준비도 없이 노트장 들어 몇 자 적어본다.

생일 축하하고 우리집 며누리로 와 주워서 고맙고, 손자도 안겨주어 고마운데 생일은 해마다 그냥 그렇게 지나는 구나.
퉁명스런 시어머니 외면하지 않고, 언제나 상냥하게 자세하게 이야기 해주는 너의 모습 마음 속으론 고맙게 생각 하고 있어.

몸도 무거운데, 너무 일 욕심 부리지 말고 쉬면서 활동 하길 바래.

끝으로 우리 식구 건강하길. 또 너 순산하길 기도 할게.

미역국, 배추겉절이, 더덕 준비해 놓았으니 구워서 먹어라.

2015. 5

송문자씨가 며느리의 생일에 준 편지

우리는 언젠가부터 세상은 혼자라는 것을 배운다. 그리고 동시에 마치 혼자 알아서 커 온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보이지 않았던 그 돌봄의 손에 얼마나 많은 빚을 져 왔던가. 그것은 그저 ‘엄마’라는 이름으로 일반화해버리기엔 훨씬 더 구체적인 노동의 힘이다.

그 돌보는 손은 나를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주고, 씻겨주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많은 시간들을 나와 함께 해주었다. 그리고 머리가 크면서, 나도 혼자 커온 것으로 믿게 되었다. 하지만 나를 돌보았던 그 손은, 나의 성공과 안녕을 기도하는 손이 되면서 자연스레 나의 아이까지 돌보게 되었다.

 

돌보는 손, 기도하는 손이 도시를 키운다.

은서야.

딸같이 그냥 그렇게 부르고 싶어. 그동안 고마웠어. 살갑지 않은 성격의 시어머니와 사느라 마음 고생도 많았겠지. 다시 만나 살지 못 살지는 모르지만, 같이 있는 시간들 더 편안하게 도와주지 못하여 미안하고 핑계를 댄다면 나이 탓이라 할까.

거침 없이 두려움 없이 밀고 나가는 너의 성격,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그 성격으로 그 영리한 네 머리, 성공하리라 믿어.
그리고 너를 닮은 애들도 잘 키워내리라 믿어.

모든 일이 잘 된다 하더라도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이 허사인 것 같애. 너희 아무쪼록 건강에 유의 했으면 하고, 아무 기반 없는 황무지와 같은 그곳에 가서 두 아이들 데리고 개척해 나가야 하는 생활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고 안쓰럽기 한이 없지만, 너희들이 선택한 길이니 성공만을 빌 뿐이야. 자주 연락 주고, 아이들 커가는 모습 볼 수 있게 해주면 돼……

아무쪼록 건강하게 목적을 향해 최선을 다하길 빌겠어.
적은 돈 크게 받아주길 빌어.

2017. 2

송문자 씨가 며느리를 분가시키며 쓴 편지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서늘한 도시에서 경쟁하고 참고 살아남고. 우리는 어떻게 이 전쟁과 같은 일상을 버티고 있을까.

정신력? 성실함과 부지런함?

그렇지 않다. 내가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구체적인 손길에 의해서다. 이제는 이 손길이 있음을 드러내보이는 것이 도시에서의 일상을 좀 더 살 법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어머니는 모두 당연하게 어머니의 역할을 해와야했던 것인냥, 그리고 그것은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숭고하게만 여겨지고 마는 것을 사양하자. 우리 어머니들은, 그리고 우리들 중 어머니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전쟁과 같은 일상을 버티며 함께 도시를 키워 내 왔다.

어버이날 희망선물 1위는 몇 년간 늘 ‘현금’ 이라고 한다. 그 분들이 바라는 것이 단순히 돈을 의미하는 것일까. 더 늦기 전에 정신 차리고 한 번 더 돌아 보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시를 키워 낸, 그리고 우리의 삶을 지탱해 온 1등 공신들에게 제대로 박수를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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