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게임 열전: 차가운 도시인을 위한 인생 게임 <스타듀 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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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패미컴 팩을 후후 불어가며 <슈퍼 마리오>를 했고, 컴퓨터 있는 친구네서 <프린세스 메이커 2>를 했죠. <파이널 판타지 8>이 출시되었을 땐 뮤직비디오가 멋있어서 용돈을 모아 <플레이스테이션2> 를 샀다가 게임은 반도 못 깨고 (엔딩은 나중에 유튜브로 봤습니다) 철권이나 열심히 했어요. 하드한 컴퓨터 게임은 해 본 일이 없습니다. <스타크래프트> 전성기 시절에 대학을 다녔는데 한 번도 플레이 해 본 일이 없고, <문명 V>도 출시 후 몇 년이 지나서야 시험삼아 해봤어요(그리고 2주의 시간을 잃었습니다…).

이런 안이한 유저인 저도 가끔은 진지한 궁서체로 게임에 임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일에 치이고 사람 때문에 힘들 때 소파에서 이불 덮고 핫초코 마시며 주말을 날리고 싶어요. 그런데 게임력 부족한 제게는 고전이라는 <툼 레이더>나 <어쌔신 크리드>조차 그림의 떡이고, 요즘 인기 게임을 찾다 보면 뭔 좀비에 생화학무기에 살인마까지 감당 못 할 긴장감이 난무합니다. 싫어요. 핫초코 뿜을라.

그러다 작년에 ‘스팀’을 알게 되었고, <스타듀 밸리(Stardew Valley>라는 우주 최고의 게임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스타듀 밸리>는 어찌 보면 간단한 농사짓기 게임입니다. <스타듀 밸리>에 새로 이사 온 주인공이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농장을 꾸리는 이야기죠.

계절에 따라 재배할 수 있는 작물이 정해져 있고, 계절이 지나면 작물은 죄다 시들어 버려요. 그래도 밭 갈고 씨뿌리고 물 주면 농작물은 알아서 자랍니다. 심심할 즈음엔 낚시를 하면 돼요. 마을 남쪽으로 내려가면 바닷가가 나오는데, 야심 따위 1도 없어 보이는 어부 윌리에게서 고급 낚싯대와 미끼를 구매할 수도 있죠. 북쪽으로 가면 산도 있고, 그 밖에 들판 어디서든 열매와 나무를 채집할 수도 있어요. 몬스터와 보석이 난무하는 산 속 동굴 던전도 있습니다.

풀과 꿀이 넘치는 주인공네 농장

그러나 제가 이 게임을 사랑하는 이유는 풍작이나 풍어의 기쁨도, 모험과 살상의 스릴도 아닙니다. 착해서 좋아요! 더러운 현실 속 인간사를 잠시라도 잊게 해준다니 자비로운 오락거리 아닙니까. 이 게임을 혼자 다 (온화함 쩌는 BGM까지) 만들었다는 제작자 에릭 바론에게 추석 선물 사과상자라도 주고 싶은 마음이예요.

일단 시작부터 선량해요.도시의 벌집같은 사무실에서 일벌처럼 일하던 주인공은 돌아가신 할아버지로부터 뜬금없이 농장과 주택을 물려받습니다. 부럽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안 계신 걸… 하고 슬퍼할 필요도 없어요. 농사 짓다 3년 지나면 할아버지의 영혼이 나타나 그간의 성과를 칭찬해 주십니다.

낫놓고 풀 벨 줄도 모르는 도시인이 <스타듀 밸리>에서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마세요. 이사 첫 날부터 촌장 루이스와 동네 목수 로빈이 반겨줍니다. 농장을 나서면 상점, 의원, 레스토랑을 겸한 주점, 대장간까지, 있을 건 다 있지만 현실에는 절대 없을 온화한 마을이 나타납니다. 이 마을의 주민들과 친해지는 것이 사실 이 게임의 핵심이예요. 첫 퀘스트도 마을 사람들 모두와 인사하기라니까요.

처음엔 형식적으로 반겨주거나 까칠하게 내치던 마을 사람들이 친해질수록 속마음을 열고 마을 정보, 농사팁, 그리고 어두운 가정사까지 술술 얘기하죠. 술주정뱅이 어머니와 트레일러에 사는 마을 선생님 페니, 전쟁터에서 돌아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전직 군인 켄트, 착한 노숙인 라이너스 등 의외로 현실적인 캐릭터들이 그득해요.

미혼남녀와 친밀도가 높아지면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할 수 있어요. 연애는 여러 명과 할 수 있지만 (남녀 가리지 않고!) 결혼은 한 사람과만 할 수 있죠. 저는 이 게임을 플레이하기 직전에 결혼을 했기 때문에 ‘뭣 땜에 게임에서까지…’ 하는 마음으로 마을 모든 젊은이들과 연애를 하고 결혼은 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애정하는 캐릭터는 프리랜서 프로그램 개발자 세바스찬과 모험을 동경하는 잡화상 딸 아비게일입니다.

사람이 싫다면 동물 친구들과 살 수도 있어요. 개나 고양이를 기를 수 있는데다, 마구간을 짓고 나면 세상 가장 귀여운 조랑말을 얻어 타고 다닐 수도 있죠. 농장답게 닭부터 양, 토끼, 소까지 다양한 동물들을 키울 수 있고요. 여기서 또 하나의 스윗 포인트는 주인공이 요리를 할 수 있지만 고기요리는 만들 수 없다는 점(생선은 마구 회쳐 먹을 수 있지만…). 가축들과 애정도가 높아지면 대형 달걀이나 오리털 등 레어템도 받을 수 있죠.

현실에 없을 피크닉 더블 데이트

그래도 <스타듀 밸리>의 가장 거대한 매력 포인트를 꼽으라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입니다.

저도 이 게임을 처음 플레이할 때는 하루를 쪼개어 아침에는 농사 짓고, 오후에는 낚시나 동굴 모험을 하고, 저녁 때는 마을 사람들과 호감도를 쌓는 식으로 동분서주했어요. ‘스타듀 밸리 위키’를 수시로 뒤져가며 마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요리를 체크하곤 했죠. 그러다 농장에 축사에 마을 회관까지 재건하고, 마을 모든 젊은이들과 연애를 시작하고 깨달았어요. 내가 왜 게임에서까지 이렇게 뛰어다니나…

농사니 연애니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돈 한 푼 없어도 주인공이나 가축의 건강이 상하지 않아요. 마을 사람들이 음식을 보내주기도 하고, 스탯을 쌓지 않아도 봄꽃 무도회부터 겨울 얼음축제까지 즐길 수 있어요.

전 스위스 로잔에 살 때 이 게임을 플레이했어요. 창 밖에 호수가 있고 프랑스 작은 도시 에비앙과 알프스 산이 펼쳐져 있었지만, 정작 자연의 풍요로움과 목가적 전원생활은 이 게임에서 즐겼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빌딩숲이 답답할 때면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이 아니라 <스타듀 밸리>를 하죠.

도시인의 인생 게임이라니까요.

(글: 미니맵 칼럼니스트 이유진. 이 글은 2017. 6. 26. 미니맵 매거진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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