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원: 장애인과 함께 싸우는 인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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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되고 지쳐있는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 나가는 것, 그리고 그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것.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자신의 모습을 꿈꾸어 보지 않을까요? 하지만 현실적 여건에 부딪히면서 꿈을 접곤 하죠. 게다가 세속적 고민을 날려버릴 정도로 풍요로운 장래가 보장되어 있다면, ‘마음의 보람’을 찾기 위해 힘든 길을 택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법조인이 ‘공익 변호사’라는 길을 택하게 되는 계기는 무엇일까 궁금했어요. 고층 빌딩숲에 사는 로펌 변호사가 되든, 안정적인 공직을 택하든 무수한 선택지가 있을텐데 말입니다. 비장하고 대단한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담백한 어조로 돌아온 답변은 ‘흘러 흘러 왔어요.’ 머리에서 범종이 울리는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가장 와닿는 답변이라고 느꼈지요.

이 멋진 정답의 주인공, 장애인권법센터 대표변호사이자 열혈 활동가인 김예원 변호사님이십니다.  


학창 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셨어요?

별로 안 좋았어요(웃음). 외관 상 드러나는 장애(주: 한쪽 눈의 의안)가 있다 보니 놀림을 많이 받았죠. 학교 다닐 때 별명이 개눈깔, 인조인간 소머즈였어요. 아빠가 그런 애들에게 지지말라고 하셨고, 저도 누가 저를 놀리거나 부당한 상황을 겪는다 싶으면 못 참고 나섰어요. 어릴 때부터 힘도 센데다 누구 앞에서 주눅드는 스타일도 아니다 보니, 태권도 검은띠 남자애가 놀려도 제가 싸워서 이겼어요.

아기자기한 추억 같은 건 많지 않아요. 괄괄한 인간의 생존 분투기라고나 할까요? 고등학교 때에는 집안 형편도 어려워져서 바쁘신 부모님들 대신해 동생도 돌봐야했고, 아침 7시 반까지 학교에 가서 11시 반까지 공부해야 했는데 등하교 하는데만 버스로 왕복 세 시간이었고… 매일매일 버티는 심정으로 보냈던 것 같아요.

중학교 시절부터 법조인이 될 꿈을 가지셨다고 들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주변에서 변호사나 판검사가 좋은 직업이라고 들었으니 무의식적인 영향도 받았겠죠. 하지만 원래 지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예요. 특히 말싸움에서 져 본 적이 거의 없어요. 따지고 토론하기 좋아하는 성격인데, 어느날 제 눈이 의안이 된 사연을 듣게 된 거죠. 저는 기억나지도 않는 어릴 적에, 의료사고가 연달아 두 번이나 나면서 제 멀쩡한 눈이 적출되고 신경조직이나 근육조직이 같이 잘려나간 거예요. 너무 억울한 사연인데, 제가 봐도 더 이상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더라고요.

만일 제 딸에게 그런 일이 생긴다면 평생을 걸고 싸울 일일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 윗세대만 해도 사는 게 힘들다 보니 아예 대응하기를 포기하셨던 것이죠. 저는 어린 나이에 그 점이 너무 원망스럽고 이해가 안 갔어요. 동시에 나 말고도 이런 일을 겪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내가 그 사람들을 위해 싸워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마침 고등학교 때 ‘법과 사회’라는 과목도 재밌더라고요. ‘대학가면 공부해야지’ 생각하면서 헌법 전문을 읽는데, 한자가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자습시간에 한자 공부해서 2급 자격도 땄어요.

그래도 법조인이 택할 수 있는 직업 중에 ‘공익’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흘러 흘러 왔어요, 솔직히 말하면. 사법연수원에서 공익법률기금을 조직하는데 힘쓰기도 했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공익 전담 변호사가 될 생각은 없었어요. 헌법연구관이 되고 싶어서 헌법재판소에 지원했는데, 최종면접 결과가 좋지 않았어요. 결국 눈을 돌려 대형로펌에서 운영하는 공익재단법인 ‘동천’에 입사했죠. 월급이 안정적으로 나오는 점에서 기업 CRS팀과 비슷하게 공익 관련 업무를 맡은 월급쟁이였달까요. 그것이 공익 변호사로서 제 첫 활동이었는데, 사실 대단한 희생을 각오하거나 엄청난 결단을 해서 간 것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활동하면서 보니까 사회에서 벌어지는 실제 상황이 너무 심각한 거예요. 제 성격이 공익 변호사 업무와 잘 맞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통상 법조인이라면 약간의 거리감도 유지하고,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 저는 그런 방식보다는 완전히 활동가처럼 일하는 게 더 잘 맞아요. 피해자랑 같이 열 내면서 욕하고(웃음). 그리고 사람들 만나는 게 너무 재미있는 거에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떤 길이 있을 지 머리 굴려서 찾고, 같이 으쌰으쌰 연대해서 활동하는 게 너무 재미있는데, 그건 일반 변호사의 송무업무와는 다른 것이거든요.

이런 조각들이 맞아 떨어진 덕분에 제 마음 속의 열정에 불이 붙게 된 것이죠. 계속 열심히 이 길을 걷다 보니 지금 여기까지 온 것 뿐이에요.

운명처럼 공익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되신 것 같네요!

아, 그런가요?(웃음) 확실히 아직까지는 다른 분야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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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나아가 법조인 업계가 보수적이라는 선입견이 있어요. 실제로 여성이 종사하기 힘든 직종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여성이라서 크게 힘들었던 기억은 없어요. 다만 출산과 육아의 부담이 일로 이어지는 부분은 있죠. 아이가 없거나 미혼일 때 수행했던 업무의 수준에 비해 육아를 병행하는 지금의 나는 업무에 소홀한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닌가 스스로 점검해보게 돼요. 다행히 예전에는 초짜였고 지금은 경험이 쌓였기 때문에 조금 수월한 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제가 아쉬울 때가 있어요.

업무 중 힘든 점을 꼽자면, 장애인 인권침해 상황을 조사하러 다닐 때 관련시설에 있는 담당자들이 나이 드신 남자분들이면 여성 변호사에게 협조를 잘 안 해주신다든가 무시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행동이 오히려 저의 조사의지를 상승시키는 데… 보면 안타깝죠.  

그래도 조직에 기대서 평가 받기 보다는 개인의 활동과 열정으로 평가받다 보니 대체로 만족하면서 일하고 있어요.

여성이라서 더 긍정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점도 있나요?

공익 변호사 분야는 오히려 여성이라는 사실이 장점이 될 수 있다고 봐요. 공익 활동의 기본은 공감이거든요. 남자가 여자보다 공감을 못한다는 말이 아니라, 여성들 중에 피해자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의 비율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제가 요즘 집중하는 일이 장애인 노예 사건, 장애인 대상 성폭력, 장애아동 학대, 혹은 아동학대로 인해 장애가 생긴 사건들이예요. 피해자를 위해 대응하는 활동을 하죠. 이 때에도 여자로서 능숙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피해자와 수사관님을 오가며, 자칫 날카로울 수 있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가져갈 수 있다든가요.

공익 변호사로서 탈북민, 난민, 이주 외국인 등 사회적 약자 전반을 위한 활동을 하시다가 현재는 장애인권에 집중하고 계시죠. 본인의 장애가 영향을 크게 미쳤나요?

그렇지는 않아요. 사실 저는 장애 분야는 하고 싶지 않았어요. 동천에서 일을 시작할 때 6개 분야(북한, 이주민, 난민, 장애, 사회적 기업, 공익 일반)를 동기와 반씩 나누어 맡기로 했었죠. 저는 ‘북한’ 분야를 먼저 택했고, ‘장애’는 택하지 않았어요. ‘장애’라는 이슈 자체가 낯설었거든요. 주위에 장애를 가진 친구도 거의 없었고, 무엇보다 제가 장애인이라서 그 분야를 택했다는 소리를 듣기 싫었어요.

그런데 멘토 변호사님 한 분이 “한 번 해봐, 해보고 말해”라고 하셔서 말 그대로 한 번 해봤죠. 막상 해보니까, 소위 ‘장판’이라고 하죠? ‘장애인 인권판’ 사람들도 너무 좋고 연대하는 방식도 좋더라고요. 엄청나게 역동적이예요. 동천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아예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사람들과 연대하는 방식에 맛을 들인데다 장애 분야가 포괄하는 영역이 넓다는 점도 매력적이어서 결국 장애인권 변호사의 길로 나아가게 됐죠. 막상 장애인권 활동을 하다 보니 저도 장애인이라는 당사자성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고요.

‘장애’라 하면 언뜻 한정적인 쟁점으로 보이지만 사실 보편적인 문제예요. 나이 제한도 없이 노인부터 아동까지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장애인의 이동권과 관련한 물리적 인프라나 환경 문제도 이야기 할 수 있고요. 교육, 고용 등 장애 문제와 연결되지 않은 사회 분야가 없잖아요.

장애인권 문제 중에서 앞으로 특히 집중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가요?

장애인 노예 사건처럼 장애인을 학대, 폭력한 사건들에 대응하는데 매진하고 싶어요. 지금 주로 하는 일이죠.

제가 오지랖이 넓어서 그 외에도 집중하고 싶은 분야가 많아요. 하지만 ‘장애인인데 이혼하고 싶어요,’ ‘장애인인데 떼인 돈 받아 주세요’ 하는 식으로 본질적으로 일반 민형사사건인 경우는 맡지 않아요. 장애를 ‘원인’으로 발생한 사건을 다루고 싶은 것이죠. 그리고 비영리 활동이다 보니 무연고자나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은 경우처럼 어디에도 도움을 구할 데가 없는 분들을 지원하는데 집중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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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권 활동을 하시다 보면 감정적으로 힘든 경우가 많을 것 같아요. 어떻게 감당하시나요?

일단 피해자랑 같이 화를 내요. 개**, 쓰레기** 그러면서(웃음). 중요한 건 그 후에 어떻게 하느냐예요.

제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인데, ‘어쨌든 사건은 벌어졌어요.’ 그 자체를 돌이킬 순 없죠. 앞으로 어떻게 헤쳐 나가는가가 가장 중요해요. 피해자분들과 함께 이 과정을 어떻게 생존해나갈 것인가를 같이 고민해서 싸워가는 것이 핵심이예요. 그 분들께도 이 과정 자체를 즐기자 말씀드리고 같이 풀어 나가요. 그러면 그 분들도 피해자라는 수동적인 입장에서 자기가 칼자루를 쥐고 있는 주인공이 돼요. 물론 마인드를 이 정도로 바꾸는 과정이 쉽지 않고, 그렇게 바뀌었더라도 경찰이나 법원에서 증언 한 번 하고 오면 “나는 피해자야…” 하는 모습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많죠. 그렇다 할지라도, 이 모든 과정을 발판 삼아 남은 인생을 찬란하게 살 수 있도록 도약하시라는 차원으로 풀어나갑니다. 때문에 제 일이 마냥 힘들어 죽겠다 하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하지만 심각한 아동사건이면, 피해 아동에게 그런 긍정적인 이야기를 말하는 자체가 오히려 더 고통스러운 경우가 있어요. 아이가 엄마한테 너무 많이 맞아서 죽을 뻔했다가 겨우 살아난 사건이 있었는데, 그 아이한테 자기 주체성을 심어주겠다며 섣불리 이야기를 할 수는 없는 거죠. 그냥 “사랑한다, 너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 중에 아주 소중한 걸작품이야.” 이런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 뿐이지, 자기 주체성을 찾아주기는 힘들어요. 피해자와 충분히 대화하고 맞춰가며 풀고 싶어도 한계가 있는 상황이니까요. 그런 사건조차도 제가 맡아서 힘이 되어줄 수 있어 좋아요.

지금까지 맡은 사건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어떤 것이 있나요?

하나를 딱 고를 수 없어요. 다 사정이 귀해서요. 오히려 언론에 크게 보도되고 주목받는 사건보다는, 자잘한 사건이라도 피해자들이 많이 회복되는 걸 볼 때 저에게 의미가 더 커요. 원주 사랑의 집 사건을 보면 가해자가 장애인 21명을 학대했는데, 사건이 드러났을 때 생존자는 4명 밖에 없었고, 그 중 2분은 학대시설을 나온 이후 돌아가셨어요. 가해자는 3년 6개월 형 밖에 안 받았고요. 이렇게 숫자로만 보면 이 사건의 결과가 좋다고 말하기 어렵죠. 그렇지만 그 생존자 중 한 분은 지금 네일아트도 받고, 염색도 하고, 남자친구도 사귀면서 재미있게 살고 계시거든요. 그런 게 저에겐 더 의미가 있어요.

장애인에 관한 법과 제도를 만드는 사람들과 일반 ‘비장애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요?

‘입장바꿔 생각하기’, 그게 모든 인권문제의 핵심인 것 같아요. 상업적인 서비스의 대상이든 정책의 대상이든, 장애인을 나와 전혀 다른 타인으로 취급하면 점점 그들이 도구처럼 느껴지거든요. 자신이 하는 업무의 도구. 그렇게 관점을 고정하고 나면 장애인을 동등하게 보지 않고 낮추어 보더라고요. 여기서부터 사소하게 놓치는 부분들이 생겨요.

저희 딸이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최근에 공문을 보내왔어요. 불우한 환경의 한부모 가정 아동을 지원한다는 홍보성 공문이었는데, 그 아이가 길에 지나가면 누구나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신상명세를 자세히 적고 컬러 사진을 실어서 배포했더라고요. 좋은 의도로 한 일이겠지만, 그 아이를 대상화하고 시혜적인 마음으로 대할 때 바로 이렇게 실수가 나타나는 거죠.

장애인들에 대해 역지사지가 어려운 이유는 비장애인들이 그들과 분리되어 살기 때문이에요. 장애인과 마주쳤을 때, 자신과 다르게 생기고 다르게 표현하고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을 보면서 이질감을 느끼고 무서워하는 마음 자체를 탓하는 것이 아니예요. 그 마음을 두고 인권감수성이 부족하다고 손가락질할 수는 없죠. 하지만 한 번이라도 더 그 사람의 입장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면 정책부터 조금 더 개선되지 않을까요? 작년에 행정자치부에서 ‘가임기 여성 지도’를 만들어서 큰 논란이 있었잖아요. 담당자들이 한 번이라도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고 느껴봤다면 그런 일이 없었을텐데… 같은 차원의 이야기예요. 때문에 장애인 탈시설화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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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워킹맘 5년차 김예원님께 질문 드립니다. ‘제도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이런 점이 개선되어야 육아부담이 적어질텐데…’ 싶은 부분은 무엇인가요?

남자들이 일찍 집에 오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할 것 같아요. 어떤 설문조사에서 ‘내가 육아를 행복하게 하고 있다’고 답변한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서 취합한 결과를 본 적이 있는데, 굉장히 공감했어요. ‘여성인 내가 일찍 퇴근한다’는 답변은 없었고, ‘남편이 일찍 퇴근한다’는 답변 비율이 높더라고요. 남편이 일찍 퇴근하는 가정에서 여성이 육아를 행복하게 할 확률이 높은 것이죠. 물론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바뀌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점점 더 나아질 것 같아요.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요?

지금하는 일을 오래, 재밌게 하는 거예요. 우리 아이들한테 제가 하는 일을 언제라도 오픈해서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참 재미있게 살면 좋겠어요.

한 번은 딸이랑 손잡고 놀이터에 다녀오면서 대화를 나눴어요. 제가 “엄마는 힘이 세!”라고 하니까, 딸아이가 “엄마 힘이 왜 세?” 라고 묻더라고요. 제가 “엄마 뭐하는 사람이랬지?” 하고 다시 물었죠. 평소처럼 “변호사야”라고 할 줄 알았는데, 아이가 “힘든 사람 도와주는 사람이잖아”라는 거예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답변이었는데 엄청 와닿더라구요. 그 대답을 듣고 저도 “어, 도와주기보다는 그 사람들이랑 같이 하는거야. 같이하는 건데 이왕이면 엄마가 힘도 세면 좋잖아!” 이런 식으로 말을 했거든요. 딸이 이제 다섯 살인데, 그 어린 아이도 그런 말을 하고 저를 지지해준다는 것이 감동적이었어요. 그 대화 내용처럼, 그렇게 오래 오래 일하면 좋겠어요.

(사진: 최혜영. <나를 만나는 사진수업> 대표.  프리랜서 사진가/예술교육강사.)

이 주연
모든 사람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항상 꿈꾸고 노력하는 평범한 30대 한국 직장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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