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게임 열전: 이제는 부끄럽지도 않다 <아이러브니키 for Kak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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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슬아슬하게 타이밍 맞춰서 뛰어다니는 액션 게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앵그리버드(Angry Birds)>도 스트레스 쌓여서 안하고, <어쌔신 크리드(Assassin’s Creed)>는 건드리자마자 접었어요. 집짓고 농장 운영하는 온화한 시뮬레이션 게임이 좋아요. 그런데 모바일 게임은 금방 질리게 되더라고요. 처음에는 호쾌하게 나가다가 갈수록 건물이라도 하나 지으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고, 신속하게 게임을 진행하려면 돈을 내야 하는 프리미엄(Freemium) 방식 때문에 말입니다.

귀여운 모바일 시뮬레이션 게임을 찾아 설치하고 삭제하기를 거듭하다 보니, 구글스토어 추천 목록에 심심찮게 올라오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아이러브니키 for Kakao>. 구글스토어 순위에서도 눈에 띄더군요. 심지어 시뮬레이션 분야 매출 1위.

처음에는 게임 아이콘을 보고 질겁했어요. 초등학생 용돈 타깃 순정만화 같은 그림체라니. 왠지 손대면 안 될 영역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호기심을 참다못해 다운로드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집에서. 그리고 플레이를 시작한 지 20분이 채 되지 않아 제 지난 날을 반성했습니다. 이렇게 완성도 높고 탄탄한 게임을 무시했다니!

스토리는 단순하고도 오묘합니다. 니키라는 소녀와 애완 고양이가 미라클 대륙에 떨어졌는데, 그곳은 패션 스타일링이 부와 명예를 결정하는 세계였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소녀에게 배틀을 걸어오죠. 소녀는 소장한 의상과 액세서리 중 콘셉트에 맞는 아이템들을 적절히 스타일링해서 패션 실력을 겨룹니다. 연이은 배틀 속에서 각기 다른 왕국을 탐험하고요. 현실세계와 가까운 애플 왕국을 거쳐, 중국풍 물씬 나는 아샤 왕국으로 향하고, <왕좌의 게임>의 도른을 연상시키는 샌드 왕국과 서양 판타지의 완전체급인 카나리아 왕국을 거칩니다.

<드래곤볼> 버금가는 배틀만능주의의 단순한 구조입니다. 캐릭터를 강화하기 위해 맞추어야 하는 능력치가 공격력, 방어력, 신속함 등이 아니라 화려, 우아, 큐티 등일 뿐이죠. 여기에 웹툰 <패션왕>과 오렌지 카라멜의 <상하이 로맨스>를 배합한 듯한 오묘한 매력이 더해집니다. ‘낯선 행인’ 스타일을 어떻게 연출하라는 것이며(챕터 2-2), <캔디마녀와 별빛바다>의 우아하고 귀여운 스타일이란 무엇일까요(챕터 3-7).

그래도 이것이 정녕 10대만을 위한 게임인가 의심가는 요소들이 있어요. 예를 들자면…

아이템 ‘향기팔찌’ / 설명 ‘청춘의 꽃잎처럼 눈물은 책 사이에 끼워 넣자’
: 순수했던 중2시절이 떠올라요. 실제 중2 학생들이 이 마음을 알까요.

아이템 ‘소믈리에 원피스’ / 설명 ‘아름다운 여자와 향기로운 술은 전설을 만든다.’
: 응?

스테이지 4-6에서 오피스레이디 실비아의 대사 / ‘면접은 통과했는데, 회사가 나랑 좀 안 맞더라고. 그래서 이번에는 디자인쇼 모델 오디션에 지원해 보려고 왔어.’
: …그런 것으로 하자.

아이템 ‘사무실의 여신 자켓’ / 설명 ‘사무실에 핀 장미처럼 빛나는 그녀. 리더십있는 스타일이다.’
: 역시 판타지게임.

이쯤 되면 유사 브랜드가 떠오르죠. 에뛰드 하우스. 둘 다 대놓고 소녀들을 노린 핑크핑크 라라랜드 느낌의 브랜드인데다, 실제로 콜라보 이벤트도 하더군요. 에뛰드 하우스의 립스틱 이름들을 보세요. ‘분노하는 레드’, ‘애태우는 베이지’, ‘애매모호핑크’, ‘다시봐도 코랄’, 심지어 ‘단물빠진 와인’까지. 처음에는 웃기다가 나중에는 납득하죠. 익숙해지고 나면 고마워요. “그렇지, 다시봐도 코랄일세! 내가 바르지도 않을 핑크색을 또 사는게 아니야!” 하면서요.

사실 어른들이 <아이러브니키 for Kakao>에 끌린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옛날옛적 스마트폰이 없고 종이와 연필이 팽배하던 시절, 누군들 종이인형 놀이를 해보지 않았나요. RPG 게임을 하든 전투게임을 하든, 캐릭터 의상을 바꾸는 옵션은 있지 않나요(<진 삼국무쌍>에서 삼국지 인물들에게 현대 직장인 의상을 제공했을 때는 너무 나갔다 싶었습니다만). 레고의 성인고객이 늘어나는 이유 중 하나도 당당하게 인형놀이를 하고 싶은 어른들의 마음이 아닐까요. 자라(Zara)나 H&M에서 두 번 안 입을 옷을 충동구매하는 경험은 종이인형 옷을 갈아입히며 변신하는 쾌감을 느끼던 추억과 얼마나 멀까요.

그 인형 놀이를 수백 벌의 옷과 아이템과 헤어스타일을 갖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옷을 구하는 경로도 다양합니다. 스테이지를 깨고 상으로 받을 수도 있고, 상점에서 편하게 구매할 수도 있죠. 사실 플레이하다 보면 옷을 돈 주고 사는 편이 가장 간편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이 점도 어덜트…). 그 밖에도 ‘의상 리폼’이라니, 학창시절 교복을 입어본 자는 의상 리폼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분해가공’이라, 누군들 옷 사놓고 입어보니 영 아니라 부엌가위로 좍좍 찢고 싶은 충동을 느껴보지 않았을까요.

2016년 7월에 출시되었으니 딱 한 살된 게임인데, 4천 개가 넘는 의상 아이템이 쌓여 있다니 존경심이 들 정도입니다. 가장 고마운 점은 굳이 현실 돈을 쓰지 않아도 게임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거예요. 능력치가 약한 의상 중에도 예쁜 것이 많고, 게임 속 힌트만 따라가도 스토리를 진행시키는데는 무리가 없어요. 물론 모든 배틀을 이기고 지구정복… 대신 전세계 흩어진 유저들을 이기고 싶다면 돈을 쓰세요.

심지어 패션에 관심이 없어도 게임을 즐기는데 무리가 없습니다. 스토리도 유치한데 정 붙거든요. 주인공 캐릭터가 백지장 종이 인형마냥 얄팍한데도 어느새 응원하게 되어요. 그 외에도 오피스 레이디부터 수줍은 70년대 고교생까지 다양한 캐릭터들이 있다 보니 누구 하나한테는 정이 갑니다. <프린세스 메이커 2>를 떠올려 보세요. 플레이를 거듭하다 보면 나중엔 마왕이니 드래곤 신부니 막장엔딩을 시도하지만, 처음 플레이할 때는 손수 이름붙인 딸이 병이라도 나거나 길거리에서 이상한 남자라도 만날까 봐 진심으로 걱정이 되지 않던가요.

그래도 대놓고 소녀지향인데 남성 유저들은 손도 못대는 것 아니냐고요? 에뛰드 하우스에도 남성라인이 있는 것 아십니까. ‘#남자는 핑크‘라죠. 남성 유저가 즐기지 못할 이유가 없어요. 어린 소녀였던 과거의 저도 중년 남성 마리오에게 감정 이입해서 쿠파와 맞서 싸우는데 어색함이 없었는 걸요. 제 남편의 친구는 데스메탈 광팬인데 아기 고양이도 너무 좋아합니다 (헤비메탈 밴드 컵 위에 아기 고양이 스티커가 붙어 있어요). <풋볼 매니저>를 좋아하는 청년도 그 능력치 조합기술을 십분 활용해 <아이러브니키>의 강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옷장을 열면 반 이상이 유니클로인 저도 ‘푸른봉황 원피스’와 ‘전쟁의 여신 부츠’를 수집할 수 있고요. 아주 재미지게 말입니다.

(이 글은 2017. 7. 24. 미니맵 매거진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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