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미국인 입양아, 그 정체성을 지키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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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Freddy Marschall on Unsplash

최근 미국의 정치 풍토를 보면, 명백한 사실을 하나의 의견쯤으로 치부하고 인종에 따른 차별 대우를 출입국 금지령으로 둔갑시키곤 한다. 언론지면에는 전쟁의 가능성을 정당화하는 헤드라인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가 사는 세계 자체를 불편하게 느끼게 만든다. 특히 미국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인종 또는 민족적 배경이 아닌 사람에게 그 불편함은 더욱 깊이 와 닿는다.

미국을 포함한 세계 곳곳에는 백인이 주를 이루는 사회에서 자라난 비백인 입양아들이 살고 있다. 자신이 사회에 완전히 동화되어 그 일원이 되었다고 믿으며 자라난 사람들. 이들은 비록 그 수도 적고 목소리도 작지만, 오늘날의 사회 환경 속에서 정당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많은 입양아들이 겉보기에는 아시아인이지만 내면은 거의 중산층 백인과 같은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안고 있다.

우리는 동물 입양에 대해서는 망설임 없이 권장한다. 애완동물 가게에서 순종 혈통을 사기보다는 동물보호소에서 개나 고양이를 입양하는 것이 좋지 않냐는 의견을 말한다. 자신들을 받아주고 사랑해줄 가정을 필요로 하는 동물들이 너무나 많은데 큰 돈을 내고 애완동물을 살 필요가 있느냐고 물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사람, 특히 아이를 입양하는 것에 대해서는 복잡한 주제라 여겨 대부분의 경우 이야기를 피하거나 가볍게 넘겨버리기 십상이다.

아이를 입양하는 것을 동물 입양에 빗대어 말하는 것은 터무니없고, 터무니없다고 여겨져야 마땅하지만, 이 세상에는 불쌍한 아이에게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주고 불행한 미래로부터 구해 주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권하는 공동체들이 적지 않다. 집을 잃거나 고아가 된 아이들을 구원하겠다는 이들에게 미래를 점치거나 예언을 하는 신성한 능력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에 비해 좀 더 부드럽지만 많은 면에서 더 나쁘다고 느껴지는 접근법은 입양아들에게 ‘행운’을 인정하거나 ‘감사’하도록 강요하는 방식이다. “넌 너희 가족에 입양된 게 정말 행운이야” 아니면 “입양되지 않았으면 얻지 못했을 기회들을 생각해 보면 너무나 감사하지 않니?” 하는 식으로 말이다.

오해는 하지 말았으면 한다. 나는 내가 입양아라는 사실에 완전히 만족하고 있다. 나는 내 양부모님과 우리 가족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나는 나 자신이 어딘가 부족하다고 느끼지도 않고, 내 일부분을 잃어버린 느낌을 받는다는 등 입양아나 입양과 관련해서 자주 언급되는 문제들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오랜 기간에 걸친 자기계발을 통해 내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이렇게 진심으로, 그리고 정직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사람들이 은연 중에 입양아를 동물과 비교하거나, 알 수 없는 과거나 미래에 대해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 강요할 때면 나도 언짢음을 느낀다.

남한과 북한의 분단을 야기한 1950년대의 한국 전쟁은 한국인들 각자에게도 크나큰 재정적 부담을 지웠다. 여기에 생존에 대한 욕구와 문화적 요구들이 더해져 한국의 많은 가정이 자녀를 포기해야 했다. 오늘날에도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유로, 또는 부모의 문화적 한계나 신앙으로 인해 포기당하는 아이들이 존재한다. 해외 입양이라는 선택지는 베트남, 중국, 러시아, 중국 등으로도 퍼지게 되었다. 주로 서방 국가 또는 초강대국의 정치적 영향을 경험한 국가들 사이에서, 해외 입양이 자국의 아동 빈곤 문제를 해결해줄 뿐 아니라 관련 기관이나 심지어 정부가 돈을 벌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인식이 생겨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전 세계의 여러 국가에서 일어나는 국내 입양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도 큰 틀에서는 다르지 않다. 입양이 어디서 일어나든 간에, 입양은 입양아의 삶을 개선한다는 것이 대중적 믿음이다.

비록 입양아들이 각자 느끼는 편안함, 복잡함, 만족감의 정도는 모두 다르지만, 해외 입양아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것은 고국으로 부르게 된 나라에 잘 적응하여 그 일원이 되고자 하는 열망이다. 그래서 요즘 뉴스에서 나오는 미국 내 논쟁들은 우리를 걱정하게 하고 우리의 가장 큰 두려움을 상기시켜준다. 바로 우리가 스스로 얼마나 사회에 적응했고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하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두려움 말이다.

물론 중요한 것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입양아 입장에서 양부모가 자신의 시민권 취득을 위한 서류 절차를 완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걱정을 할 수밖에 없다. 입양된 나라의 여권이 그들을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라고 믿어야만 할 때에도, 그렇게 믿고 출국해야만 할 때도 걱정을 할 수밖에 없다. 입양아들은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아직 고민 중이라 할지라도, 사회와 국가의 일원으로 나설 때에는 보통 각자의 집으로 여기는 국가들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정치가 인간성을 지배하고 사회 여론의 흐름 속에서 인간이 동물 정도의 가치로 (동물이 하찮다는 건 아니지만) 취급받게 된 지금, 입양아들은 또 한 번 버림받을 수 있다는 잠재적 가능성을 직면하고 있다.

정치, 사람들의 막연한 두려움, 혹은 여론 속에 드러나는 선택적 무지가 입양아들의 정체성을 멋대로 결정해버리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의 도움이 필요하다. 결국, 누구나 그렇듯,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우리에게 가족과 집을 마련해준 국가의 시민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지 조금 다른 경험과 배경을 가졌을 뿐이다. 감사할 의무도, 축복을 받았다고 느낄 의무도 없이 그저 우리가 자라난 국가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싶을 뿐이다.

(이 글의 영어 원문은 여기)

 

Tara Footner
Tara Footner (a.k.a. Om Sun Hui), is a Korean adoptee who grew up in Oregon, U.S.A. She now lives in Japan with her husband after nine years’ adventure in Abu Dhabi, U.A.E. When not putting pen to paper, she focuses on talent development and wellness trai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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