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혜성: 립스틱 만드는 엄마, 딸을 생각하는 스타트업

DSC09988-0 (s)

엄마가 될지 말지, 어떤 경력을 만들어 나갈지, 여성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들이죠. 오롯이 각자의 선택에 따라야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많은 여성들의 현실입니다. 직장 여성도 결혼 후 출산과 육아를 병행하다보면 기존 직장 업무에 가사 업무가 추가되는 상황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출산과 육아를 위해 퇴사하게 되면 이후 직장 복귀나 재취업이 어려워 경력이 단절되기 십상이고요.

현실이 이렇다보니 아기 엄마가 1인 기업을 창업한다는 것은 함부로 도전하기 힘든 꿈같은 일 입니다. 게다가 불꽃튀는 뷰티업계에서도 접전의 현장이라는 립스틱 제조업은 엄두도 나지 않을 것 같지요. 그 힘든 일을 해내고 계신 분이 바로 율립(YULIP) 대표 원혜성님입니다.


예전에 뷰티업계에서 일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신만의 뷰티 브랜드를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어렸을 때부터 워낙 화장품을 좋아했어요. 대학 다니면서 뷰티업체 홍보를 돕기도 했고, 졸업 후에는 뷰티 에디터로 자리를 잡았죠. 매거진 업계에서 5년 정도 일하고, 홍보대행사로 옮겨 9년 정도 뷰티 브랜드 홍보를 담당했어요.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면서 퇴사하게 되었고요.

경력을 이어가기 위해 아기 생후 백일무렵부터 일자리를 알아보았지만 쉽지 않았어요. 직장도 구하지 못하고 육아에 전념하다보니 우울증이 올 정도였어요. 그 때 친구가 ‘구글 캠퍼스 포 맘(“구글캠”)’이라는 창업교육 프로그램을 알려주었죠. 엄마로서 배려를 받으면서 (구글측에서 교육장에 베이비시터를 두고 있을 정도였어요), 한 사람의 예비창업가로서 교육을 받는 것이 큰 기쁨이고 행복이었어요. 도전이기도 했고요. 회사에 다니면서도 창업에 관한 생각은 늘 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거든요.

창업교육을 받으면서 자신감을 얻고, 취업 자리를 기다리느니 내 경력, 내 실력을 믿고 내 브랜드를 만들어 보자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죠.

율립 립스틱 ‘AM 11:00’과 립밤 ‘Lip Almighty’

뷰티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무궁무진하죠. 천연 성분 화장품, 그 중에서도 립스틱을 만들기로 결정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가장 큰 이유는 제게 필요했기 때문이예요. 제 피부가 파라벤, 금속, 염료 등 온갖 성분에 알러지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뷰티 제품은 쓸 수가 없었어요. 피부과 의사 선생님이 메이크업 제품을 조심하고. 특히 립스틱은 지우더라도 그 성분이 입술에 일주일 정도 남으니 쓰지 말라고 강조하실 정도였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화장품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뷰티 에디터로서 제품을 테스트하는 것이 일이기도 했지만 신제품을 보면 써보고 싶고 자극성이 적은 제품이라면 어떻게든 구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어릴 적부터 직접 비누나 천연 화장품 크림을 만들어 쓰기도 했고요.

엄마가 된 후에는 제 얼굴이 언제라도 아기와 닿게 되니까 더욱 화장을 할 수가 없게 되었고 육아를 하다 보니 화장을 할 시간도 없어졌죠. 그런데 꾸미고 싶은 마음은 줄어들지 않았어요. 출산하면서 낯빛이 많이 상했기 때문에 외출할 일이 생기면 더 메이크업을 하고 싶어졌고, 시간이 없어도 립스틱만이라도 바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제 뷰티 브랜드를 만든다면 립스틱부터 만들기로 결심했어요. 발색이나 발림성은 고급 립스틱 못지 않으면서 저처럼 피부가 예민한 여자들도 아기 엄마들도 안심하고 쓸 수 있는 천연 화장품으로 만들자고 생각했죠. 그 결과 율립 립스틱은 산자나무오일, 동백오일, 치자오일 등 좋은 성분을 포함해서 100% 천연 유래 성분으로 만들었어요. ‘율립’이라는 브랜드명도 ‘나와 우리 딸 모두 건강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자’는 뜻을 다지기 위해 딸 이름 ‘율희’에서 따온 것이에요.

확고한 사업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육아와 가정이라는 현실의 벽 앞에서 꿈을 접는 경우가 많습니다. 1년 넘게 율립을 준비하고 시장에 내놓기까지의 과정은 어떠했나요?

작년 말에 브랜드 컨셉을 확정해서 제조 업체들까지 다 찾아 두고도 자신이 없었어요. 올해 봄까지 주저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창업을 추진했죠. 이대로 가면 꿈에 도전해 보지도 못하고 경력만 단절될 것 같더라고요.

시장에 내놓기 전에 검증을 받고 싶어서 ‘율립’ 브랜드로 국가지원사업에 신청하기 시작했어요. 제출할 사업계획서를 작성할 때도 육아를 병행하다 보니 아기가 잠드는 밤에 일을 시작해 새벽까지 쓰곤 했어요. 그 와중에 아기가 아프기라도 하면 올 스탑 되어버리니, 오히려 마음을 비울 수 있게 되더라고요 (웃음). 그런데 감사하게도 경기도 여성능력센터의 1인 창조기업으로 선정되어 사무실 공간을 지원받게 되었고,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창업프로젝트에 선정되어 초기 자금도 지원을 받게 되었어요.

이제 시장에 나설 차례라고 각오를 다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느 대기업에서 율립과 비슷한 컨셉의 브랜드를 출시했어요. 걱정이 커졌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고, 율립을 세상에 내놓을 방법을 고민하다가 택한 방법이 크라우드 펀딩이었어요. 왜 이 브랜드를 만들게 되었는지, 엄마로서 여자로서 어떤 간절한 이유가 있었는지, 직접 고객들에게 이야기하고 반응을 보자는 생각이었죠.

어떤 제품을 처음으로 선보일까 실험을 거듭하다 전업주부든 직장여성이든 매일 쓸 수 있는 색상을 찾고, 립스틱 둘에 립밤 하나를 더해 3종 세트를 만들었어요. 그 다음 단계부터 크라우드 펀딩을 오픈하기까지 구글캠에서 만난 실력파 엄마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디자이너가 율립 로고부터 상자까지 디자인을 도와주고, 쇼핑몰 운영 경험자가 택배 포장을 도와주는 식으로요. 돌이켜 보면 율립은 제 힘만이 아니라 주변분들의 도움이 쌓여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어요.

율립 립밤 ‘Lip Almighty’과 립스틱 ‘Am 11:00’, ‘Wed.Fever’

크라우드 펀딩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는데 텀블벅(주: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에서 목표금액의 350%를 달성하면서 1천만 원 넘게 판매고를 올리셨죠. 그 후 메이커스 위드 카카오(주: 수요가 발생한 만큼 제품을 생산 및 유통하는 모바일 주문생산플랫폼)에서도 1차 판매고가 매진되어 2차 판매에 돌입하셨고요. 그 과정은 어땠나요?  

크라우드 펀딩의 성공 여부는 홍보에 달려 있다는데 저와 지인들의 SNS만으로 충분할지 걱정이었죠. 제 인스타그램을 율립과 겸해서 쓰다 보니 율립 창업의 비하인드 스토리, 육아 이야기를 함께 전하게 되었는데 의외로 호응이 좋았어요 (웃음). 다행히 펀딩 직전에 글로벌 스타트업 페스티벌 ‘헤이 스타트업’에 율립이 ‘새싹부스’ 대상 기업으로 선정되어 참가하게 되었고요. 부스를 방문하신 분들께 샘플을 보여 드리며 크라우드 펀딩을 알렸죠.

막상 크라우드 펀딩을 오픈하고 나서는 겁이 나서 제가 진행상황을 직접 보지 못하고 친구들이 알려 줄 정도였어요. 목표금액을 넘기기만 해도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그 세 배 넘게 호응을 주실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펀딩이 끝나갈 즈음 메이커스 위드 카카오에서 율립을 팔아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고요.

결국 런칭부터 지금까지 1인 뷰티 스타트업의 성과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멋지게 성공하고 계신데요, 고객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온라인 리뷰를 보면서 감동을 많이 받았어요. 각질이 들뜨지 않는다, 입술에 립스틱이 끼는 일이 없어 좋다, 무엇보다 입술이 너무 편하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제가 꿈꾸던 대로 착한 립스틱으로 쓰임받고 있구나 싶었죠. 가끔 보이는 부정적인 반응도 생각보다 발색이 짙다는 등 초기에 개선할 의견을 주신 것이라 감사했고요. 특히 암환우들이나 아토피 환우들은 피부가 극히 예민해서 조금이라도 잘못된 성분을 바르면 피부에 탈이 나는데, 율립은 그런 부담이 없다는 후기를 보면 뭉클했어요. 암환우들도 꾸미고자하는 욕구가 많은데 시중에 그 분들이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은 거의 없거든요.

중년의 어머님들에게서 예상 못했던 호응을 받기도 했어요. 지난 달에 ‘메가쇼’라는 라이프스타일 박람회에 참가했는데 중고생이나 대학생 딸을 둔 어머님이 구매하시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요즘 생리대, 치약 등 유해 성분에 대한 사회적 문제들이 많이 발생하다 보니 어머님이 딸 건강을 생각해 성분이 안전한 화장품을 먼저 사주고자 하시는 것이죠. 율립이 세대를 넘어서 ‘엄마와 딸이 함께 쓰는 립스틱’으로 자리잡아도 좋을 것 같아요.

1인 기업으로서 사업을 키워나가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은데, 육아를 병행하기가 힘들지 않으세요?

열정이 넘쳐서 쉬지 않고 일하는 젊은 미혼의 스타트업 창업자 분들을 보면 참 대단해요. 저도 율립을 런칭하던 초기에는 제가 미혼에 아이도 없고 24시간 창업에 몰두할 수 있었다면 사업이 더 잘 진행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곤 했어요. 사업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비로소 육아를 하는 것이 사업가로서 저의 복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사업에 취해 욕심이 늘어나기 시작할 때 저를 잡아주는 것이 육아거든요. 율립에 대한 이런 저런 제안을 받고 기분이 들뜨다가도 집에서 딸을 돌보다 보면 ‘이 소중한 일상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마음으로 중심을 다잡고 일과 생활의 밸런스를 찾게 되어요. 이 중심추 없이 맹목적으로 돌진했더라면 일에 전념하는 제 성격상 과부하가 걸려 실패했을지도 모르죠.

반대로 어린 딸을 둔 엄마로서 사업을 병행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일 듯 합니다. 엄마로서의 역할을 어떻게 세워나갈 계획이신가요?

율립을 운영하면서 율희에 대해 정말 많이 생각해요. 다른 엄마만큼 챙겨주지 못하면 어쩌나,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 외로움을 느끼면 어쩌나하고요. 요즘도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을 때 율립 업무를 처리하고, 아이가 집에 돌아온 후에는 최대한 아이와 모든 걸 같이 하려고 해요.

육아는 양보다는 질이라는 점이 다행이랄까요. 하루종일 붙어 있다보면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아이한테 짜증을 내버리는 경우도 있었는데, 제 영역이 생기면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함께 있는 시간에 최선을 다해서 아이가 허전함과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하려고 해요.

율립 대표 원혜성 (사진: 최혜영)

율립의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요?

립스틱 다음 단계로 천연 아이쉐도우를 구상해 보았는데, 아직 한국에서 제조하기는 쉽지 않더라고요. 지금은 제품 라인을 늘리는 것보다 립스틱 색상을 더하고 품질을 개선하면서 소비자들에게 ‘율립 립스틱은 확실히 좋다’는 인식을 심어 드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브랜드를 쌓아 나가는 단계니까요. 이번 달에 코랄 색상을 포함해 또다른 3종 세트를 내놓을 예정인데, 첫 제품을 만들 때보다 더 떨려요.

율립의 궁극적인 비전은 ‘소울 코스메틱’이예요. 얼굴만을 위한 화장품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함께 건강하고 아름다워질 수 있도록 돕는 도구가 되고자 하는 것이죠. 사업 초기부터 제품만 아니라 사회공헌활동으로도 비전을 실천하고 싶어서 ‘그로잉맘’처럼 엄마들을 돕는 단체와 협력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도 하고, 다양한 여성들을 도울 방법을 생각하고 있어요.

이 주연

모든 사람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항상 꿈꾸고 노력하는 평범한 30대 한국 직장인입니다.

Comments

1 I like it
0 I don't like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