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게임 열전: 동물친구들이 펼치는 왕좌의 게임 <아르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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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 좋아하세요? 한 때는 동네마다 보드게임 카페가 있었고, 클루(Clue)카탄(Settlers of Catan) 같은 게임이 흔하고 핫했죠. 요새는 모바일부터 맥북까지 온라인 게임이 대세이지만 오프라인 보드게임의 매력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습니다. 친구들이 둘러 앉아 맥주 마시고 농담도 하며 끈끈하게 노는 아날로그한 느낌 말이죠.

이와 같은 보드게임의 장점은 어디서 주워들은 것이고 저는 사실 보드게임을 좋아하지 않아요. 참가자들 전원의 성격이 들어맞지 않으면 재밌기가 힘들더라고요. 내성적인 친구들끼리 하면 자기 차례에 잠깐 주사위나 굴릴 뿐 사실은 지루한데 말못하는 괴로운 두 시간이 되고, 까딱하면 윷놀이하다 진짜 싸우는 삼촌들처럼 소중한 친구의 더러운 인간성을 확인하게 되는 걸요. 컴퓨터 게임도 멀티보다 싱글 모드를 선호하며 인공지능을 거칠게 몰아세우는 저입니다.

그런 제가 최근 빠져든 게임이 아르멜로(Armello)예요. 아르멜로는 RPG 시스템을 기반으로 전략전술 요소를 가미한 온라인 보드게임입니다. 장르만 들으면 흔해 보이는데 컨셉이 남달라요. <왕좌의 게임> 더하기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랄까요. <왕좌의 게임> 같이 잔혹한 스토리인데 귀여운 동물친구들이 가득!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비주얼인데 어른도 즐길 수 있는 강렬함을 겸비! 스팀(Steam)에서 발견하자마자 당장 내 돈을 가져가라고 외치며 구매했습니다. 다음 날 남편이 조심스레 말하더군요. “당신이 어제 산 그 게임, 오늘부터 40% 할인이래.” 후회는 없었습니다. 트레일러만 떼어 팔아도 살 기세였거든요.

게임의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동물왕국 아르멜로의 사자왕이 악한 영에 오염되어 약해지고 흉폭해지자, 각 동물부족은 왕을 물리칠 방법을 모색합니다. 이에 최대 4명의 플레이어가 총 16 종류의 캐릭터 중 하나씩 선택하여 왕의 자리를 두고 경쟁하게 되지요.

승리조건은 네 가지나 되지만 어렵지 않아요. 왕과 싸워서 이기거나, 왕을 정화하거나, 왕보다 더 사악한 악당이 되거나, 또는 왕이 쇠약해져서 죽은 시점에 다른 플레이어들보다 높은 명성을 보유하고 있으면 됩니다.

각 플레이어는 누구 하나 승리할 때까지 게임판을 움직이며 퀘스트를 수행하고 던전을 탐험하며 캐릭터를 키워 나갈 수 있어요. 왕의 수호기사나 다른 플레이어들과 마주치게 되면 주사위로 공격력과 방어력을 견주며 전투를 하게 되고요. 기본 능력치는 체력을 상징하는 생명력이나 마법를 쓸 수 있는 자원을 의미하는 정신력, 던전이나 마을에서 얻을 수 있는 골드 등 일반 RPG 게임과 비슷합니다. 스토리에 맞게 독특한 점이라면 전투에 승리하거나 마을을 점령하면서 명성을 쌓을 수 있다는 점과 캐릭터의 체력을 갉아먹으면서 동시에 강한 무기가 되기도 하는 ‘부패’ 정도랄까요.

다만 부루마블의 알파요 오메가가 황금열쇠 카드이듯, 아르멜로에서도 각종 카드가 게임의 묘미를 더합니다. 아이템, 마법, 술수 카드를 매 회 몇 장씩 뽑을 수 있는데 각 카드마다 애니메이션이 포함되어 분위기를 더하죠.

사실 아르멜로를 시작하면 압도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이 분위기입니다. 주사위 자갈자갈 굴러가는 소리를 제외하면 음향은 평범해요. 배경음악도 지브리 애니메이션 사운드트랙 10번 정도 수준으로 심심하죠 (그것도 instrumental 버전). 하지만 비주얼의 사랑스러움이 굉장합니다. 동물왕국답게 사자왕의 수호기사들도 근엄하지만 귀여운 멍멍이들입니다. 술수 카드 속 영악한 마법사들은 사악하지만 귀여운 여우나 너구리들이고요. 여기에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는 각각의 캐릭터들은 이 게임의 최대 강점입니다.

늑대 부족의 겨울 늑대 댄은 검객 대장답게 강한 전투력과 체력을 자랑합니다. 한가롭게 장검을 휘두르며 살다가 아버지의 죽음과 형의 추방 이후 부족의 후계자로서 진지하게 거듭났죠.

토끼 부족의 도굴꾼 앰버는 전투력은 부족하지만 다른 능력치의 균형이 좋아요. 토끼 부족 중에서도 부유한 가문의 상속녀이지만 모험심과 호기심이 남달라 고대 던전을 탐험한답니다.

쥐 부족의 ‘미소짓는 칼날’ 머큐리오는 지혜가 높아 카드 활용에 능하고 마을에서 골드를 훔쳐오는 특수능력도 갖고 있습니다.

곰 부족의 사제 사나는 아르멜로 왕국의 신 와일드를 모시며 왕국에 평화를 되찾을 방법을 모색하고 있죠. 정신력이 높아 마법에 능하고 타락한 동물을 상대로 하는 전투에 유리하고요.

이쯤되면 의문이 생기실법 합니다. 캐릭터가 이렇게 다 정해져 있으면 플레이어인 나는 뭘 하나 하고요. 사실 아르멜로의 자랑인 캐릭터들이 아르멜로의 최대 한계이기도 합니다. 보드게임의 묘미는 플레이어 자신이 캐릭터가 되어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인데, 아르멜로는 캐릭터와 세계관이 빈틈없이 짜여져 있다 보니 플레이어의 자율성이 크지 않아요. 반지나 아뮬렛으로 능력치를 조정하는 것 외에는 캐릭터를 개성있게 꾸밀 수단도 없고, 멀티 플레이를 하면 다른 플레이어들이 움직이는 동안 달리 할 일도 없거니와 무엇보다 자유롭게 대화를 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아르멜로는 멀티 플레이보다도 싱글 모드로 플레이하면서 반지나 카드를 모으는 편이 더 재미있는 이상한 보드게임입니다. 저처럼 보드게임에 흥미가 없던 자들을 끌어 들이는데 유용하달까요.

그래도 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트레일러에 속았다!’ 하는 배신감이 들지 않는 이유는 아르멜로의 세계관이 그 자체로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호주의 인디 게임제작사인 리그 오브 긱스(League of Geeks)의 작품인데 킥스타터에서 크라우드 펀딩으로 흥한데다 회사 대표작이 아르멜로 하나이다 보니 정말 팬서비스를 열심히 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캐릭터, 캐릭터 배경, 의상까지 업데이트를 할 때마다 아르멜로 팬들이 좋아할 법한 아이템이 늘어나고 있어요. 늑대 부족 영웅 댄을 주인공으로 삼은 오디오북까지 만들었더군요.

DLC는 뭔가 하고 보니 새로운 부족 ‘도적단’. 그 중 대표적 캐릭터는 도토리를 놓고 사라지는 것이 특기인 다람쥐 도적 트위스. 보자마자 외쳤지요. “게임을 사줄테니 캐릭터 상품을 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

보드게임으로서는 헛점이 적지 않지만 귀여워서 용서하게 되는 게임, 아르멜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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